안녕하세요 차연구소 지기 인사드립니다 꾸벅~
오늘은 곤명차창에 대하여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곤명차창의 자료를 찾는 도중 좀 심도 있게 다룬 자료가 별로 없어서 여러 자료와 정보, 자문등을 취합하여 포스팅 하였습니다.
중국 보이차의 역사에 있어서 국영시기 4대 차창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을 것 입니다.
1975년 중국의 중차공사는 경제개혁체제의 일환으로 4개의 대형차창에 맥호의 끝자리인 일련번호를 부여하게 됩니다.
곤명차창1, 맹해차창2, 하관차창3, 보이차창4 이 번호들은 각 차창의 산품에 따라 맥호의 끝자리에 붙는데
대표적인 산품은 곤명차창의 7581, 맹해차창의 7542,7572, 하관차창의 8653, 8863등이 있습니다.
중차공사산하의 이러한 차창들은 북방, 남방, 변방의 내수와 수출등의 목적에 따라 각 차창들을 운용하게 되고
상황에 따라 적절이 운영하였는데, 곤명차창은 초기에는 내수와 변방(티뱃등)그리고 중화문화권(홍콩, 마카오등 다루, 딤섬집에 많이 있었던 숙전차가 대표적)의 상품을 많이 만들었으며 길행패의 상표로 해외 수출 산품도 출시하였으며
맹해차창은 주로 영어문화권(화교)을 포함한 홍콩, 마카오,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권역으로 수출하였고, 하관차창의 경우 병차의 대부분은 내수용이였으며, 북방(예컨데 몽골)이나 서방(서장:티벳쪽), 유럽수출용 하관타차(법국타차)도 많이 생산했습니다. 도감의 옛 칠자병차들을 보면 중차공사를 통하여 수출된 맹해차창 산품들의 대부분은 한자와 함께 영문표기가 된 도안이 많았고, 하관차창의 병차들의 도안에는 영문표기가 없는 이유가 이렇습니다.(인사동 일승창차장 송원근 선생님 조언), 보이차창은 1975년 설립하여 일부 산차의 형태로 수출을 하였지만 그 보이차역사에 차지하는 부분이 작고 2004년 '운남보이차(집단)유한공사를 설립합니다.
곤명차창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보면 민국시기 1939년 복흥차창을 설립하고 난 후 복흥패라는 상표로 타차가 주력상품이였고 1950년 7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인수하고 국유화하여 1960년 정식으로 운남곤명차창으로 명명하고 초기의 산품은 적었으며, 65년 이후에는 일부 청차(병차)와 방차, 전차 을 주력으로, 홍차를 생산하면서 내수용과 티벳등의 변방에 공급하였습니다.
6~70년대에는 하관차창 같은데서 지금의 숙차같은 초기버전의 차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던 상황에서 광동에 발수차가 유행하면서 1970년 초 중차공사에서는 숙차개발에 추병량, 오계영등의 각 차창의 엘리트들을 파견하게 되고 기술개발을 시작하여 1973년 곤명차창에서 숙차제조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조수악퇴로 만들어진 숙차기술은 이때부터 각 차창으로 퍼져나가 적용되었으며 초기 산품은 당시 급이 떨어진 모료로 만들었기에(지금의 8.9급 또는 노엽,황편급(10) 조향(대추향)이 많이 나고 비교적 늙은 차엽을 가지고 만들었기에 긴압을 했을때 꽉 눌려지지 않고 두께가 두껍게 나왔습니다. 하여 조향후전(棗香厚塼)이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후에 만들어진 차가 73 조향후전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보관시 상태등에 따른 다른 맛들을 가진 전차도 도감에 나오는데 이는 거의 시장에서 붙인 이름으로 73삼향전, 75장향전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차들은 이름이 73 후전이지만 기록에 의하면 본격적으로 생산된 것은 75년도 부터 입니다.
전차는 민국시기 이전에 목판 긴압틀로 만들었던 경우도 있었으나 곤명차창은 초기에 일부 만들었던 고타차, 즉 긴차모양의 차를 만들었는데 이는 수공으로 만들어야 해서 생산이 힘들고 유통,보관 과정이 힘들어서 부피를 줄일수 있고, 타차같은 다른 형태의 차보다 생산이 용이한 전차를 주로 만들게 됩니다. 이에 1983년에는 기계설비를 늘리고 대량생산 하여 8~90년대 전성기를 맏이하게 됩니다. 생산량은 약 120톤정도 됩니다.
병차도 일부 생산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70년대에 미술자칠자병이 있습니다. 8-90년대에는 곤명차창에서 직접 만든 병차가 거의 없다 시피 하는데 이는 중차공사에서 운용을 맹해차창은 병차 위주, 곤명차창은 전차위주, 하관차창은 타차 위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성차사가 투자하여 공장을 개축 증축하고 청차, 화차 외 보이차도 가공, 수출하였습니다. 1975년에는 봉경차창에 외주하여 생산된 홍차를 소련에 대량 수출하였으며 76년에는 수출홍차의 생산 시설을 늘렸습니다.
1990년에는 7백만 위안을 투자하여 반자동화 생산시설을 늘리고, 공장시설등에 과감한 투자로 공장의 규모가 성에서 가장 큰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보이차를 주제로 하지만 실은 홍차의 생산량도 많았으며 대표적으로 길행패 홍차가 눈에 띱니다. (진지동의심수적칠자세계참조)
90년대에는 서서히 민영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각 차창들은 여러가지 품패(브랜드)들을 만드는데 곤명차창은 금계패와 길행패의 차가 생산되었으며 80년대 90년대 까지 7581를 많이 생산하였고 주로 중국 내수와 동남아의 남양군도 일대와 , 홍콩(남천공사(南天公司)에서 많이 유통), 마카오(화련공사(华联公司)에서 많이 유통), 광동등의 다루, 딤섬집등에서 많이 소비하였습니다.
8-90년대의 대표적인 브랜드
곤명차창 : 금계패, 길행패
맹해차창 : 대익패
하관차창 : 송학패, 보염패, 남조패
보이차창 : 보수패
7581라는 맥호는 1976년 중차공사에서 혼란한 제품을 표준화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회의를 거쳐 차의 이름을 명명하였는데 그것이 맹해차창의 7572, 곤명차창의 7581였습니다. 재미있는것은 7572는 숙차로만 알고 있는데, 극초기에는 7572가 생차로도 나온적이 있습니다(일승창차장 송원근 선생님 구술 참조)
그러나 1994년에 원가, 차청조달등의 어려움으로 경영이 악화되어 곤명차창은 영업이 중단됩니다. 도감에 따르면 뇌사전(镭射砖:홀로그램스티커붙은 7581)전차가 90년대 중반으로 나옵니다. 많은 보이차 애호가들이 이런 다사를 바탕으로 94년에 파산하면서 이후는 차는 생산하지 않았다 하고, 시장에는 98~2005년의 뇌사전차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이 뇌사전의 대부분이 가품이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이런 형태의 보이전차는 기본 도안이 너무 쉬워서 시장에 넘처나는 가품중 그 양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많은 고수들이 이런 벽돌전차는 왠만하면 무시하라고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이 곤명 숙전이 가장활발하게 거래 됬던 시기는 94년에서 98년 사이 였으며 이 시기에도 계속 곤명전차는 출품 되었는데, 영업 중단 전에 워낙 규모가 컷던지라 오래된 숙련 기술자(사부)들이 직접 공장의 한쪽에 작업장을 만들어 긴압을 하여 차를 만들었습니다 (뇌사전(镭射砖)의 홀로그램 스티커는 93년부터 붙이기 시작했으며 스티커가 당시 1센트정도 되는데, 약 2위안 정도 되는 숙전차에 사용하기는 좀 무리가 있어 한때 중단 되었다가 98년경 스티커의 단가가 낮아지고 보이차 가격이 상승하자 다시 붙이기 시작했고 2005년 산품까지 붙였습니다-2004~2005년말에는 여기저기서 스티커를 남발함). 당시는 시장과 생산이 매우 혼란했던 시기였습니다(90년대말~2000년대 초 각 차창의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흩어진 기술자들의 의해 개인 군소차창도 많이 생겨났고, 어디서나 중차패를 사용했습니다). 이후 중차공사의 지휘하에 2006년에 곤명차창은 자리를 옴겨 다시 새롭게 경영을 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으름꽃핀언덕포스팅참조)
앞서 8-90년대 곤명차창의 병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가끔 시장에 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의 곤명차창병차가 눈에 보이는 이유가 곤명차창의 영업 중단 이후 남아있던 기술자들에 의하여 프리렌서 스타일로 만들었던 차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홍인 철병)
90년대 중후반~ 2006년 사이의 곤명전차는 무도안(포장에 인쇄가 없는 차)도 나올만큼 그야말로 뒤죽 박죽 이였으며 제차의 창방을 알수 없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또 어떤 것은 노란색유광편지지같은 무도안 차도 시장에 돌아다니는데, 이는 곤명차창의 남아 있던 기술자들이나 아애 기술자들이 독립해서 소규모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는 원래 표준 도량 한근이 600그람이였던 중국에서는 공산화 이후 공산당 정부가 도량을 한근 500그람으로 규정하면서 대부분 전차는 반근 250그람으로 만들었습니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입김이 약한 국가에서는 아직도 300그람을 반근으로 활용하기에 중차공사에 주문시 자기들의 기준인 반근 300그람짜리로 만들어 달라 해서 300그람으로도 만들어졌지만, 일부는 포장지가 250그람으로 만든것 밖에 없어서 새로 만들지 않고 그냥 씌워서 수출 했다는 시장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토록 혼탁했던 시기가 90년대 말~2000년 초의 과정에서 뒤죽박죽 되었다는 것이지요.
곤명차창의 대표격인 차 이른바 꾼들사이에서 만두전차 라고도 불리우는 7581는 최초의 차 조향후전으로 올라가보면 약간씩 향미와 형태의 버전이 다릅니다.
맛으로는 70년대는 주로 8.9.10급의 모료로 조향을 위주로, 약향이 나고, 80년대 초반~90년대 중반까지는 7,8,9급의 모료위주 생산이 많아서 초반에 조향과 숙성되었을때 매자향, 용안향, 침향이 살짝 감돕니다. 물론 보관상태나 모료의 등급 등에 따라 삼향이나 장향이 나는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90년대 즈음 부터는 맛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른바 뇌사전(镭射砖)이라 부르는 차부터는 차 면의 형태로 보아도 차엽의 등급이 높아졌습니다. 물론 앞면은 좋게 하고 뒷면은 등급이 떨어진다던지, 가운데 알맹이 부분이 등급이 떨어진다던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장의 고수들이 이야기 하기를 뇌사전은 연하향(연꽃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 뇌사전은 시원한 맛을 내고 하향(연꽃향)이 살짝 있으며 우디(나무향)이 나는 기존의 80~90년대 초의 차와는 다른 맛입니다. 제가 품차를 해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또다시 문을 열게된 곤명차창의 같은 7581의 차품의 맛도 다릅니다. 물론 다시 비슷하게 제현한 차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지금 숙성된 차를 기준으로 품차 해보면
70년대~80년대 초: 조향, 약향, 삼향, 장향
80년대 초중반~90년대, 조향, 침향, 약향, 용안향, 장향, 매자향
90년대 이후 연하향, 목향, 약향, 삼향
2006년 이후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맛에 대한 것은 여러 평차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
포장지나 면의 형태등도 다른데, 곤명전차의 조기 산품(70년대)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모료의 등급이 많이 떨어지는 경향과 긴압하는 틀이 좀 구식이여서 그런지 두껍고, 80~90년대는 긴압하는 기계설비와 금형의 개선과 모료의 개선으로 좀더 단단하고 얇게 긴압되었습니다.
도안의 측면에서는 시대별로 위에서 기술한 수운/평운 뿐만아니라 보이의 이(洱)의 삼수변의 형태, 전(塼)자의 밭전자 부분의 형태, 운남(雲南)의 글씨 두깨등이 조금씩 다릅니다. 또 시장에는 문혁전차라고 부르는 7581가 있는데 이는 다른것이 아니고 문혁시기 (1966~1977)생산된 전차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실재로는 차 또한 부르조아의 산물로 치부되어 한때 생산이 거의 중단 되었다 합니다. 보이숙차의 본격적인 생산이 75년 이였음으로 시장에서는 문혁 말 ~80년대 초반까지 생산된 차를 보통 문혁전차라고 이야기 합니다.
곤명차창의 전차들은 조기 산품(75~80년대 초반)들의 대부분이 실질적으로 생산된 곳이 곤명차창의 예하 부속차창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곡차창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곤명차창은 직접 생산도 했지만 부속된 예하차창이나 군소차창에 외주(하청)를 주어 만들어서 도매 유통(보이차, 홍차등)을 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70년대~80년대 초의 조기 산품과 80년대 초중반~90년대 전성기의 산품은 다릅니다.
7581은 발효 정도, 원료 수준 또는 맛 등이 생산 초기에 성숙한 것이 아니였으며, 표준화 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쿤밍 전차의 초기 버전은 제품의 안정성과 품질에 가장 적합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1983년 이후부터 곤명차창은 기계설비, 금형등의 대대적인 개선으로 도안, 포장지, 생산방식등을 표준화하였으며 곤명차창의 설비로 본격적으로 직접 생산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곤명차창의 7581는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80년대 가장 인기있는 보이차중 하나였습니다.
뇌사전은 좀 특이하게 끝 면들이 좀 날카롭게 튀어 나와있습니다. 물론 이전것도 조금씩은 그런 경향이 있는데, 그 빈도는 적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날카로운 끝 면들이 포장지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툭 튀어 나와있습니다. 만약 뇌사전인데 이런게 전혀 없이 깔끔하다면 의심해볼만도 합니다. 그런데 뇌사전은 방품이 별로 없는 차이기도 합니다. 뇌사전 말고는 좀 어지럽지요. 보이차를 보는 눈은 포장지, 긴압형태, 인쇄, 포장형태, 맛등이 모두다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어느하나라도 다르다면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봐야 합니다. 혹 어떤분은 이렇게 이야기 할수도 있습니다. 그거 금형 만들면 되는것 아닙니까? 예, 그럴수도요. 그런데 방품을 만들자고 금형을 그렇게 쉽게 만들수 없는 겁니다. 당시는 이 차가 그렇게 비싼차도 아니였음으로 굳이 금형을 만들어 방품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맛이나 포장지의 질감, 도안 등을 보면 어느정도 진기인지(숙차의 경우 숙향이 빠지는 시기가 거의 15년정도면 조금만 남고, 20년 이상되면 거의 느낄수가 없다)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모든것을 고려해 보면 이 차들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습니다.
아참. 이 뇌사전의 홀로그램은 잘 보시면 닭 머리 그림 입니다. 금계패 아시지요? ㅎㅎ 이 상표를 벽계(碧鸡)라고 합니다.
PS. 이 포스팅은 책과, 인터넷의 자료, 차시장의 이야기들, 그리고 선배 차인들의 도움으로 정보를 취합하여 만든 자료 입니다. 하여 실재와 다른 부분이 있을수 있으며 수정, 보완될 수 있습니다. 하여 이 자료를 스크랩 하는 것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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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8 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