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나/생각담기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매뚜기 2011. 9. 13. 13:40

 

 

인생은 카르마의 긴 여정이다.

 

인연법은 전생의 카르마에 의해서 생겨난다. 업(業)은 꼭 갚아야할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에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인간은 이 업보의 법을 벗어날 수 없다.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단세포에서 부터 서로 먹고 먹히고 공생하는 관계에서 윤회를 거듭하여

우리는 신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진화는 왜 할까?

 

진화는 생존의 법칙으로 결함을 매꾸어 가는 긴 여정이다. 진화를 거듭할수록 완전체에 가까와 진다.  완전무결한 것은

단 하나 있다. 바로 전지전능의 신이다.  인간은 단세포에서 긴 억겁의 시간을 진화하고 윤회하여 신에 가장 가까운 지성체이자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의 가진 진화의 마지막은 바로 영적성숙이고 도통. 해탈이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것 중 가장 큰것은 바로 고통이다. 불교에서는 해탈에 이르는 길을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로 말하고 있다.

사성제 중 고(苦)와 집(集)이 우리가 그렇게도 살기 힘들어 하는 이유다.

고(苦)는 인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4가지 고와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인 구불득고(求不得苦), 오음(五陰) 즉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고통인 오음성고(五陰盛苦)  의 8가지로 말한다.

 

 

 

 

이 8가지의 고중에 愛別離苦가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고통은 많이 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굶는 고통인 구불득고

죽임을 당하는 원증회고, 집착에서 생기는 오음성고, 태어남과 늙음과 병과 죽음의 고통..

 

늙음이야 어쩔수 없는 것이고, 병들고 죽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며 그 시간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병들어 육체가 느낄수 있는 극한의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른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

 

남아 있는 이들에겐 고통을 남겨주고 간다. 이 생사별이의 고통 외에도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은 남겨진 이들이겐 결국 혼에 각인되어 또다시 윤회의 고통을

반복하게 한다. 현생에서 애별리고를 격은 이들은 그 욕심에서 비롯된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내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윤회다.

 

늙고 병들은 사람이 계속 살고 싶어하는 욕망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알았다. 그것은 정. 즉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해어지지 않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온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이다.

자식은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두가지 선택을 주겠다.

 

당신은 병들고 늙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당신은 앞으로 3년후 이승을 떠난다.

두가지 선택권을 주겠다.

 

1. 당신은 병든 이몸을 가지고 20년을 더 살겠느냐?

2. 지금 짧은 극한의 고통을 격고 바로 죽겠느냐?

 

어렵고도 쉬운 답이다.

 

이번엔 다른 입장에서 본 질문이다.

 

당신은 병들고 늙은 아버지가 있다.

병들고 늙은 아버지는 앞으로 3년후 이승을 떠난다

 

1. 당신은 병든 부모님을 보살피며 20년 동안 살고 보넬것이냐?

2. 지금 짧은 극한의 고통을 격고 바로 보네겠느냐?

 

어렵고도 쉬운 답이다.

 

또하나의 질문이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간다.

이때 신이 나타나 두가지 선택권을 준다.

1.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이 죽는 날까지 함께 하게 해주겠다. 단, 당신은 지금부터 가난을 면치 못할것이다.

2. 당신은 지금처럼 편안한 삶을 누릴것이다. 이 사람은 죽는다.

 

어렵고도 쉬운 답이다.

 

왜 사랑이 가장 큰 고통일까?

 

이질문에 대한 답이 답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에 가장 큰 고통은 사랑이다.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욕심에서 온다. 욕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식(識)에서 온다. 識은 오감(五感:보는것, 듣는것, 냄새맏는것, 맛보는것, 피부로느끼는것)에서 인식된다.

즉 오감을 인식한다는 것은 몸(육체)가 있음으로 가능하다. 이에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하셨다.

 

오감과 번뇌는 식으로 인해 찰나의 단위로 끈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럼 욕심을 어떻게 버릴수 있을까?

오감과 번뇌는 끈임없이 인식되는데?

 

방법이 있다. 인식되는 것 그것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 수많은 번뇌가 상을 만들어 생겨남과 사라짐이 계속 반복된다.

이 상을 지워야 무아지경에 이를수 있다. 진정한 공(空)이다. 이 상을 어떻게 지울수 있을까?

지워야 한다는 생각조차 지운다. 그러면 어떻게 그 생각을 지울 수 있을까?

그냥 생각의 흐름을 바라만 본다.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없는 空의 상태가 된다. 이것이 진정한 無我之境이다.

진정한 무아지경이면 참나(진아:眞我)를 볼 수 있다.

진아를 본 순간 부터 진정한 도의 시작이다.

 

 

 

 

 

 

 

 

도가에서는 마음이 영(靈),혼(魂),백(魄)이라 한다.

영은 상단전에 위치한다.

혼은 중단전에 위치한다.

백은 하단전에 위치한다.

 

영은 나의 몸과 마음의 진정한 주인(眞我)다.

혼은 나라고 불리는 마음이다.

백은 생명력(연료)근본 마음이다.

 

 

이런말이 있다.

인간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욕심을 채우면 부자가 된다.

도의 세계에서는 버릴수록 부자가 된다.

 

지식은 배울수록 는다.

지혜는 배운것 인지하는 것을 버릴수록 는다.

 

지식은 인간이 만들수 있지만

지혜는 신이 준다.

 

 

도의 길은 멀기만 하다. 먼것은 알겠는데 도통을 하지 않은 인간은 인간인지라 인간으로서의 마음은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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